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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로판/129] 여주의 시스콤 오빠와 이혼하겠습니다

장르소설 보는 폼폼 2023. 9. 20. 20:28

#로맨스판타지 #책빙의물

 


 

여주의 시스콤 오빠와 이혼하겠습니다 | 오앤

 

평점

 

★★★☆☆ 3.0/5.0

특정 요소의 납작함을 지적하는 것치곤 단순한 악역 활용이 아쉬웠다.

 

줄거리

 

최애 육아물 소설 '회귀해서 꽃길만 걷기'에 빙의한 이델. 여주의 오빠와 결혼해 사랑하던 캐릭터들을 맘껏 볼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하던 것도 잠시, 이델은 현실의 벽에 부딪히고 만다. 소설로 볼 땐 마냥 따뜻해 보였던 공작가 사람들과 한 가족이 될 수 있을 거라 여겼지만, 오직 여주만을 아끼고 사랑하는 일가는 그녀를 냉대하기만 하고…….

 

리뷰


아는 사람은 다 알다시피 나는 육아물 클리셰라 불리는 것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런 호불호에 이유는 여러 가지 있지만 생략하고(자세한 건 이 리뷰) 그중 가장 싫어하는 것은 여주의 가족, 주로 아버지와 오빠들로 구성된 남성 구성원들의 캐릭터성이다.

이 폭력적이고 왜곡된 시각을 가진 집단은 다 큰 성인이 되어서까지 여주를 쪽쪽이 문 아기처럼 다루고, 여주에게 집착해 주변 인물들에게 무례를 저지르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며, 그들의 인생은 오직 여주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군다.

(그들의 이런 행위를 가족들이 나를 너무 사랑해서라고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여주는 덤. 아무리 사랑에 목마른 캐릭터라 해도 가족들이 그런 식으로 굴면 애정이 아니고 애증이 쌓이기 마련이라 생각하는데 말이다. 그런 반면 다른 가족이 실례를 저지른 가족을 싸고돌면 가족이라도 할 말은 해야 한다고 지적하는 점이 우습다.)

한 마디로 여주를 사랑하기 위해 존재하는 로맨스 외 관계의 남성 집단. 그것이 그들의 존재 의의이다. 이 집에 사랑받는 것이 허락된 여자 구성원은 오직 여주뿐으로 이것이 (유사)가족간의 로맨스를 다룬 작품이 아님에도, 아버지를 제외한 오빠들조차 자기 인생에 여성이란 여주밖에 없는 것처럼 군다.

이 소설에 손을 댄 이유는 그래서였다. 육아물 여주 오빠의 새언니. 이 소설의 제목과 개요를 본 순간 '육아부둥물 여주의 시누이가 되었다고? 미친 거 아닌가? 그 집에 여주 외의 다른 여성 가족 구성원이 허락된다고?'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그런 것은 허락되지 않았다.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 주인공은 전형적인 육아물 가족답게 내 딸, 내 동생밖에 모르는 가족들과 그런 자신에게 한정된 애정을 당연하게 여기는 여주, 마찬가지인 사용인들 사이에서, 없는 사람처럼 수년을 버티지만 결국 이혼장을 내던지게 된다.

 

 

육아물 클리셰를 제3자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기이한 부분을 꼬집어내는 점이 즐거웠다.

 

특이하냐 특이하지 않냐고 묻는다면 이제는 그리 독특한 발상은 아니다. 육아물 뿐 아니라 많은 로판 클리셰들이 이런 식으로 지적되고 그것을 비트는 것 자체가 또 하나의 클리셰가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간지러운 구석을 긁어주는 것은 늘 시원하다.

 

보통 육아물에선 어린아이의 노력과 내면에 있는 성인 회귀자의 능력이 그의 주변인을 하나둘 함락시켰다고 납득시키려 하지만 늘 뒤따르는 의문이 있다. (애초에 어린아이가 노력해야 사랑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마음에 안 든다는 점은 넘어가자.)

 

그것이 과연 정상적인 판단력을 상실할 정도인가? 아이가 잘못을 저질러도 무조건 감싸게 되는 사랑을 진정한 애정이라고 봐도 되는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는 이유로 죄의 경중조차-어떨 땐 죄가 없어도 따지지 않고 다른 이를 위협하고 무례를 저질러도 괜찮은가?

 

한발짝 외부에서 바라보면 같은 세계관에 존재하는 사람이라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여주와 그녀를 둘러싼 세계는 이처럼 기이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 소설에선 주인공이 남편과의 이혼을 위해 증거를 수집하고 증인을 구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의문점들을 하나씩 제기한다. 의문점들은 이윽고 여주를 둘러싼 하나의 의혹이 된다. ‘이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고 한다면, 여주는 대체 어떻게 사람들을 이렇게 만든 걸까?’

 

소설에선 그 해답으로 여신의 축복이란 이름의 세뇌 효과를 제시한다.

 

전형적인 구조의 기이함을 지적하기 위해
전형적인 악녀가 되고 만 원작 주인공.

 

요즘 경향을 보면 선악구도가 명확한(정확히는 욕할 놈이 확실한)편이 흥미를 끌기 쉽다는 것은 이해한다. 문제가 있다면 그것을 책임질 사람도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왜곡된 현실의 중심에 있는 원작의 주인공이란 가장 손쉽게 떨어트릴 수 있는 존재일 것이다.

 

그렇게 원작 여주는 여신의 축복을 사용해 주변인들을 세뇌하고, 그렇게 얻은 애정이 변할까 봐 주인공을 고립시키고, 유일하게 세뇌 없이 사랑해준 친구를 배신한 존재로 탄생한다.  그 안엔 사랑받고 싶다는 욕망과 신의 축복, 회귀를 통해 얻은 미래 지식이 있을 뿐, 마치 그 자신에겐 사랑받아 마땅한 매력도 능력도 없는 사람처럼 그려진다. 자기합리화와 짧은 생각으로 제대로 된 사고조차 하지 못한다. 마치 주인공의 예정된 승리를 위해 조형된 것처럼.

 

주인공을 적대하는 상대 중, 주인공에게 직접적인 학대를 가한 그녀의 혈육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여주의 피해자로 그려지며 심지어 작중 자신의 가문을 위해 온갖 범죄를 저지르고, 현대에 있었다면 태극기 내지는 M*GA 슬로건을 들고 다녔을 법한 인물도 '못됐지만 미워할 수 없는 할아버지'로 그려지는 것과 대조적이라고 느꼈다. 틀에 박힌 악녀이자 독자들의 분노가 향하는 과녁틀이 된 것이다. 어쩔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원작 주인공과 대비된 모습을 보이고자 했지만,
결국엔 처음부터 끝까지 신의 사도 아니야?

 

아쉬운 점은 한 가지가 더 있었다. 소설 내내 주인공의 진영, 그러니까 남주와 주인공과 원작 주인공들을 비교하며 강조한 부분이 있다. 내 심금을 울렸던 작중 남주의 말을 보자.

 

"참 이상한 일입니다. 저는 왜 이복동생이 유리할수록, 제 위에 있다고 여겨질수록 황제의 자리가 탐나는 걸까요. 불공평하다고 느껴집니다. 그래서 제 손으로 증명하고 싶어집니다. 축복받기만 한 인간은 세상에 없다는 것을."

 

이어서 주인공의 말도 보자.

 

"나는 약과야! 신이 리에나한테 내린 그 이상한 축복 때문에 피해당한 사람이 어디 한둘인 줄 알아?!"
집사장과 조슈아, 엘리엇 등의 얼굴이 차례로 내 머리를 스쳤다. 나는 이참에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기로 작정했다.
"신 따위 정말 싫어! 인간의 일은 인간이 알아서 하게 내버려둬!"

 

이처럼 주인공 진영의 대표인 두 사람은 꾸준히 신의 축복에 의지하고 축복받은 꽃길만 걷는 원작 진영과 달리 인간의 힘으로 이겨낼 것, 신의 사도가 아닌 인간의 노력으로 극복하는 것을 주장한다. 그렇다면 기대하게 되는 전개가 있지 않은가. 신의 힘이 아닌 인간의 힘으로 사람들의 세뇌를 푼다든가…….

 

하지만 주인공은 마지막까지 착실하게 신의 힘을 사용한다. 주인공의 능력이 '설득'이라면 굳이 주인공에게도 축복자라는 설정을 붙여야 했나? 인간의 노력만이 작용했다면 확실하게 대비 되었겠지만 그럴듯하게 이야기하던 것에 비해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냥 신의 의지를 곡해하지 않고 힘을 악용하지 않은 사도가 되었을 뿐이지 않나.

 

결말부에서 밝혀지는 남주의 헌신을 집어넣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겠다만(할 말이 많은 표정), 약간의 내로남불 같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부분이었다.

 

마무리…

 

어쩌다보니 이렇게까지 리뷰를 쓸 건 없었는데 글이 길어져버렸다. 오랜만에 로맨스 판타지를 보았기 때문일까? 아쉬운 점을 꽤 늘어놓긴 했지만, 그게 이 소설이 나빴다는 뜻은 아니다. 그냥 무엇을 봐도 아쉬움이 남는 종자일 뿐이다.

 

초중반에 비해 후반부의 긴장감이 다소 떨어지고, 뜬금없는 마무리로 당황시키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무난하게 읽을 법한 소설이었다고 생각한다. 거의 호불호 얘기만 했지만 이 리뷰에서도 어느정도 알 수 있듯 설정이 치밀하다거나 여운이 남는 이야기는 아니다. 편안한 마음으로 생각을 비우고 시간을 때우고 싶은 사람은 볼만하겠지만, 좀더 생각을 하고 싶다거나 짜임새 면에서 큰 만족을 느끼고 싶은 사람에겐 추천하지 않는다.